그 후, 인간은 어디까지 뻔뻔할 수 있는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미투 운동(me too)'이 우리나라에서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시인 고은, 연극계 이윤택, 연기자 조민기, 신부 한만삼 등 하루가 멀다하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수선한 가운데 지난해 극장 관람후 불편한 감정에 휩사이게 했던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홍상수-김민희의 <그 후>입니다.
감독 : 홍상수
출연 : 권해효, 김민희, 김새벽, 조윤희
개봉 : 2017년 7월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과 영화에 대해 일반 대중의 평가와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평론가들 사이에 가장 큰 괴리를 나타내는 감독은 홍상수입니다. 관객의 차갑고 냉랭한 반응에도 각종 영화제는 그에게 거의 매해 상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7년 베를린 영화제 여자연기자상
<그 후> 2017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대상, 남우주연상
관객들이 외면해 별다른 수익이 없을텐데 그는 어떻게 계속 작품을 내고 있을까요? 홍상수 감독은 직접 제작사(전원사)를 차려 디지털 카메라로 초 저예산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10여명의 스태프를 동원해 열흘 남짓 기간 동안 대략적인 시놉시스만 준비해서 촬영한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해 촬영한다는 것이죠. 그의 작품이 일상에서 술 마시며 사람들간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이렇게 1억원 내외 제작비로 매년 1~2편씩 영화를 발표하고 있기 때문에 겨우 몇 만명의 관객으로도 흑자를 낼 수 있는 구조인 것이죠.
홍상수-김민희의 불륜
2016년 6월, 세상을 놀라게한 불륜 스토리가 밝혀집니다. 아내와 대학생 딸이 있는 유명 영화 감독이 영화에서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해외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가 알려지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낳았습니다. 아내분 친정 어머니는 쇼크로 실신했다고도 하고, 아내는 남편이 돌아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해 대중의 안타가움을 더했죠.
아내분은 김민희 엄마에게 '따님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너무 괴롭습니다'라고 카톡을 보냈고, 이에 '바람난 남편의 아내가 더 아플까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딸의 엄마가 더 아플까요'라는 답을 받았다고 전해지죠.
홍 감독이 집을 떠나며 딸에게 했다는 말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아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어. 그 여자가 내게 용기를 줬어. 이제 그 사람과 함께할 거야.' 그리고 아내에게는 '이제 다른 사람과 살고 싶어. 나가서 남자들 좀 만나봐'라고까지 했다고 하네요.
아내분은 시아버지 제사도 책임지고 무엇보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지극히 모셨지만, 홍 감독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두 달 뒤 집을 나갔다고 해서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던 홍감독과 김민희는 9개월 만인 2017년 3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발표회에서 불륜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캐릭터를 그대로 사용하고 본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대사로 세상에 항변합니다.
<그 후> 줄거리
이어서 발표한 <그 후> 역시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장 봉완(권해효)와 사무실에서 일하던 내연녀 창숙(김새벽), 신입사원 아름(김민희), 바람을 눈치챈 아내(조윤희) 사이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상황과 과거 에피소드, 그 후일담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집니다.
봉완의 수상 소식에 찾아온 아름을 낯설어하며 그 날 일들을 잊은듯 외면하고 회피하는 봉완은 진짜 잊은걸까요?
평론가들은 과연 진실을 말하는가
가장 애정하는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서 평론가 이고의 대사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In many ways, the work of a critic is easy.
이 세상 평론가의 작업은 여러모로 볼 때 쉽다.
We risk very little, yet enjoy a position over those who offer up their work and their selves to our judgment.
우리의 책임은 매우 적지만, 우리의 판단에 그들의 직업과 스스로를 바치는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를 누리기 때문이다.
We thrive on negative criticism, which is fun to write and to read.
우린 혹평을 쓰는 것을 즐긴다. 쓰기에도, 읽기에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But the bitter truth we critics must face is that, in the grand scheme of things, the average piece of junk is probably more meaningful than our criticism designating it so.
그러나 원칙상 당연히 우리 평론가들이 직면해야 하는 씁쓸한 진실은, 일반적인 쓰레기 조각이 아마도 그렇게 지정한 우리의 비평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But there are times when a critic truly risks something, and that is in the discovery and defense of the new.
하지만 가끔은 평론가가 정말로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걸 발견하고 보호해야 될 때다.
The world is often unkind to new talent, new creations.
The new needs friends.
세상은 종종 새로운 재능과 창조에 냉담하다. 새로운 것은 친구가 필요하다.
Last night, I experienced something new, an extraordinary meal from a singularly unexpected source.
어젯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했다. 아주 뜻밖의 상대로부터 기가 막힌 음식을 맛본 것이다.
To say that both the meal and its maker have challenged my preconceptions about fine cooking is a gross understatement.
음식과 요리사 둘 다 내가 생각하는 기존의 미식에 대한 개념에 도전을 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모두 절제된 표현이다.
They have rocked me to my core.
그들은 날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In the past, I have made no secret of my disdain for Chef Gusteau's famous motto: "Anyone can cook."
과거의 나는 요리사 구스토의 유명한 좌우명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그 말.
But I realize, only now do I truly understand what he meant.
하지만 나는 이제서야 그가 말하려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Not everyone can become a great artist, but a great artist can come from anywhere.
모두가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어디에서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It is difficult to imagine more humble origins than those of the genius now cooking at Gusteau's, who is, in this critic's opinion, nothing less than the finest chef in France.
지금 구스토 식당에서 요리하는 그 천재 주방장보다 더 미천한 신분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비평가의 견해로 볼 때, 그는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I will be returning to Gusteau's soon, hungry for more.
난 구스토 식당에 또 갈 것이다. 더 먹고 싶으니까.
평론가들이 관성에 의해 너무 쉽게 비평하는 것은 아닌지,
문단 평론가나 연극, 영화 평론가들이 고은이나 이윤택, 홍상수의 권위에 동조해 그들 역량 이상으로 영광을 누리게 만들고 그들은 부스러기를 주워 먹은 부역자 노릇을 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듭니다.
홍상수와 김민희는 그 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