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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게임, 포스트시즌에 어울리는 야구 영화

유리불도저 2023. 2. 27. 05:00

2018 KBO리그 플레이오프 승자는 최종 5차전에서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나란히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는 SK(2위)와 넥센(3위)의 승자는 두산(1위)과 함께 한국시리즈를 치르게 됩니다.

 

11/2(금) 18:30 플레이오프 5차전 넥센 vs SK (문학) | SBS 중계

11/4(일) 14:00 한국시리즈 1차전 미정 vs 두산 (잠실) | SBS 중계

 

해당 팀을 응원하는 팬들께는 죄송하지만, 소위 전국구 인기팀들이 탈락하고 평소 관중 동원력이나 TV 중계 시청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팀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예년과 같은 야구 열기는 느껴지지 않네요.

 

대신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두 영웅, 최동원과 선동열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퍼펙트 게임>을 소개해드립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만나 짧았던 가을 야구가 아쉬운 롯데와 KIA의 팬들은 헛헛한 마음을 달래볼 수 있겠네요.

 

영화 포스터

 

감독 : 박희곤

출연 : 조승우(최동원), 양동근(선동열), 최정원(김서형), 마동석(박만수), 조진웅(김용철)

개봉 : 2011년 12월

 

영화는 두 실존 인물의 행적과 그들의 경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적 상상력을 첨가했습니다.

(박만수 선수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홈런 역시..)

 

영남 vs 호남, 연세대 vs 고려대, 최고의 명승부, 최고의 선수, 혹사 or 자존심 대결 등 가장 극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치고는 만듦새가 아쉽긴 하지만 출연진의 열연(조승우, 양동근은 두 선수의 세밀한 동작까지 재현해 냈습니다!)에 힘입어 꽤 괜찮은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영화는 2011년 11월 21일에 개봉되었으나, 최동원 선수는 그해 9월 14일 별세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왼쪽부터) 선동열, 최동원, 김시진

 

 최동원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축구 선수로 활동, 야구에 흥미를 느껴 경남중 야구부에 입단합니다.

 

고교 2학년인 1975년, 황금사자기에서 당시 2관왕 최강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 17이닝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습니다.

 

전성기인 1976년, 청룡기 4강에서 선린상고 상대로 11K(탈삼진) 완봉승, 승자결승에서 군산상고 상대로 20K, 결승에서 다시 만난 군산상고에 12K 완투승을 기록했습니다.

 

연세대 시절에는 동아대 임호균과 18회 연장 승부(14회 0:0, 다음날 1:0으로 연세대 승리)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륙간 컵 야구대회 MVP에 선정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뻔 했습니다.

(병역 문제, 프로야구 흥행을 고려한 고위층 압력 등..)

 

결국 1981년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한 최동원은 206이닝(팀 324 이닝)을 소화하며 17승 4패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 1~6차전에 모두 등판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합니다.

 

1차전 : 9이닝 3실점 완투

2차전 : 7이닝 무실점

3차전 : 7이닝 3실점

4차전 : 7과 1/3이닝 3실점 * 1승 1세이브(7회까지 선발-8회초 1루수-8회 2사 만루 구원등판)

5차전 : 3이닝 무실점 구원승

6차전 : 9이닝 4실점 완투승

2승 1패 1세이브, 평균자책 2.45

 

아마추어 시절부터 엄청난 혹사에 시달렸던 것이죠.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84년, 정규시즌 27승과 한국시리즈 4승으로 31승의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리그 51경기 중 선발 20경기중 14경기 완투, 31경기 계투)

전기 1위 삼성은 후기리그 막판에 고의적인 져주기 게임을 연발하며 OB 대신 롯데를 선택했고,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우승을 이끕니다.

 

1차전 : 완봉승

3차전 : 12K 완투승

5차전 : 완투패

6차전 : 구원승

7차전 : 완투승

4승 1패, 40이닝, 평균자책 1.80

 

최동원

 

1988년, 최동원은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선수협을 구성하려 했으나 당시 구단들의 반대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후 연봉 협상 등으로 롯데와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됩니다.

 

* 2016년 11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부산 촛불집회에서 '최동원이 선수협을 만들기 위해 법률 상담을 받았던 곳이 법무법인 부산으로 문재인 변호사가 직접 상담했다'고 했습니다.

 

최동원 동상

 

선수로서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위대한 인물, 최동원을 기억하겠습니다.

 

 

 선동열

광주에서 태어난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 투수 중 한명, KBO 역사상 최고의 투수입니다.

 

광주일고 1,2학년때는 투수보다는 타자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3학년이던 1980년 봉황대기 경기고와의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습니다.

 

고려대 입학 이후, 1981년 제1회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출전해 초대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1982년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미국-대만-일본전에서 호투해 우승에 기여합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16이닝 1자책, 1승 1패, 평균 자책점 0.56의 호투를 보입니다.

 

1985년 데뷔 첫 해, 실업팀 한국화장품과 이중 계약 파문으로 후반기부터 출전합니다.

이후 프로시절은 단 1의 의구심도 가질 필요가 없는 최고의 투수로서 각종 기록을 양산합니다.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5 해태 25 111 7 4 8
(3위)
- 0.636 1.70
(1위)
74 2 23 103
(5위)
30 21 0.85
1986 39 262⅔
(2위)
24
(1위)
6 6
(4위)
- 0.800
(2위)
0.99
(1위)
153 2 59 214
(1위)
38 29 0.78
1987 31 162 14
(2위)
2 6
(3위)
- 0.875
(1위)
0.89
(1위)
89 2 50 144
(2위)
21 16 0.84
1988 31 178⅓
(3위)
16
(2위)
5 10
(4위)
- 0.762
(3위)
1.21
(1위)
116 3 42 200
(1위)
29 24 0.85
1989 36 169 21
(1위)
3 8
(4위)
- 0.875
(1위)
1.17
(1위)
82 2 55 198
(1위)
27 22 0.77
1990 35 190⅓
(5위)
22
(1위)
6 4 - 0.786
(1위)
1.13
(1위)
121 1 58 189
(1위)
35 24 0.90
1991 35 203
(4위)
19
(1위)
4 6 - 0.826
(1위)
1.55
(1위)
135 8 33 210
(1위)
42 35 0.79
1992 11 32⅔ 2 0 8 - 1.000 0.28 20 0 12 42 1 1 0.92
1993 49
(2위)
126⅓ 10 3 31
(1위)
- 0.769
(2위)
0.78
(1위)
48 2 26 164
(2위)
11 11 0.54
(1위)
1994 27 102⅓ 6 4 12
(5위)
- 0.600 2.73 81 5 29 94 31 31 1.00
1995 48
(2위)
109⅓ 5 3 33
(1위)
- 0.625 0.49 49 1 17 140 9 6 0.5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6 주니치 38 54 5 1 3 - 0.833 5.50 62 4 28 67 35 33 1.61
1997 43 63⅓ 1 1 38
(1위)
- 0.500 1.28 36 0 13 69 9 9 0.79
1998 42 48⅔ 3 0 29 - 1.000 1.48 31 4 11 58 8 8 0.86
1999 39 31 1 2 28 - 0.333 2.61 31 1 11 34 9 9 1.36
KBO 통산
(11시즌)
367 1647 146
(4위)
40 132 - 0.785
(1위)
1.20
(1위)
968 28 404 1698
(3위)
274 220 0.80
(1위)
NPB 통산
(4시즌)
162 197 10 4 98 - 0.714 2.70 160 9 63 228 61 59 1.11

<출처 : 나무위키>

 

통산 평균자책점 1.20으로 1위(2위는 최동원 2.46), 통산 WHIP(이닝당 안타+볼넷 허용률) 0.80으로 1위(2위는 이상훈 1.05)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1993년 시즌에는 10승 3패 3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0.78, WHIP 0.54로 역대 최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KBO 11시즌 동안 68 완투(4위), 29 완봉승(1위)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5년 시즌 종료후 해태에서 11년간 6회 우승에 기여한 선동열은 해외 진출 의사를 강력히 밝혔고, FA제도가 없었지만 여론의 응원을 등에 업고 일본 주니치에 진출하게 됩니다.

 

1996년 일본 진출 첫 해에는 좁은 스트라이크 존 적응 문제와 일본 타자들의 정교함, 주자들의 능력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선동열은 시즌 후 대대적인 훈련에 돌입해 업그레이드 됩니다.

1997년 1승 1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하더니, 1998년에는 3승 무패 29세이브, 평균자책점 1.48로 일본 리그 최고 수준의 마무리로 자리잡습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논란의 시절을 거친뒤, 2015년 WBSC 프리미어12 우승을 이끈 투수코치로 명예를 회복합니다.

 

2018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감독으로는 오지환 선발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다시한번 논란의 주인공이 됩니다.

 

 선발 맞대결 3경기 기록 | 팩트

결과 : 1승 1무 1패

장소 : 사직 야구장

 

▶ 1차전

86년 4월 19일 | 선동열 승 (1:0)

최동원 : 9이닝 5피안타 2사사구 1실점(투구수 118), 완투패 | 해태 송일섭 솔로 홈런

선동열 : 9이닝 6피안타 1사사구 0실점(투구수 121), 완봉승

 

▶ 2차전

86년 8월 19일 | 최동원 승 (2:0)

최동원 : 9이닝 7피안타 4사사구 0실점(투구수 150), 완봉승

선동열 : 8이닝 5피안타 1사사구 2실점(투구수 106), 완투패 | 2실점은 비자책

 

▶ 3차전

87년 5월 16일 | 무승부 (2:2) 4시간 54분

최동원 : 15이닝 11피안타 6사사구 2실점(투구수 209)

선동열 : 15이닝 7피안타 5사사구 2실점(투구수 232) | 1경기 최다 투구